두번 째 올리는 글 내용이 정말 씁쓸합니다.
항의하고 싶어도 할 데가 없어서 호텔신라 홈피 고객의 소리에  한 자 적어 보냈습니다.
그래도 답답해서 내 블로그에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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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소리에 보낸 글

"그 정도 사과 가지고는 안된다는것 아시죠? "그럼 뭘 어떻게 해달라고" 같은 질문은 하지 마세요. 정말 실망(기대한 것도 별로 없지만). 분노. 뭐 그런거 있죠? 눈물이 납니다. 동족에게 배신당한 것 같아서. 이부진 사장님께 이 건의문 보여 주실 수 있으세요? 그렇다면 제가 조금은 분이 가실텐데. 못하실겁니다. 얼마나 바쁘신 분인데. 그런데요, 제 생각은 몇 날 며칠이 걸려도 하나하나 직접 답장하셔야 많은 분들이 진정으로 사과했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혹 이해가 안가신다면 비즈니스 하시는 분이니 손실계산으로 따져보세요. 그정도는 해야 만회가 됩니다. 암튼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은 하지 마세요. 아! 그리고 주소는 외국주소는 등록이 안되서 한국 친척주소로 대충쓰고 본래 제 주소는 그 밑에 썼습니다. 할 얘기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이메일이나 메일이나 전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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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드레스코드가 있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동네 골프장에도 있는 드레스코드를 가지고 시비를 걸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물러서서 호텔측에서 회의를 거쳐 그런 규정을 만들었다면 그것이 그 호텔의 드레스코드일 것입니다. 이 또한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그 드레스코드에  한복이 "위험한" 옷으로 분류되어 입장이 불가하다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옷이 정작 그 나라에서, 옷차림에 신경쓰고 가야하는 자리에서 외면당해야만 합니까? 
사과문에처럼 부페의 특성상 아주 가끔 일어날 것 같은 "걸려 넘어지고 옷이 밟히고" 하는 문제가 입장까지 거부당하는 이유가 되겠습니까? 그런 문제들은 이용자가 주의를 하고 이용하게끔하는 정도로 해결해야될 문제입니다. 입장 자체가 불가라니요. 말문이 막힙니다.

또 사과문에서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이러한 고객 간의 불편함 및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식당 입장 전에 한복을 입은 고객 분들께 관련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드리도록 했으나, 식당 근무 직원의 착오로 미숙하게 고객에게 안내되었습니다." 
착오랍니다. 입장을 못하게 한 것이 착오랍니다. 사실은 입장할 수 있었는데 말단 직원의 실수로 내쫓은 거랍니다. 아무리 어리숙한 직원이라도 자기 밥줄이 끊길 수 있는 그런 일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습니까? 진심이 보이질 않습니다.

호텔신라, 한복, 한국민... 모두가 쪽 팔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로 시키는대로 열심히(?) 일하다 징계나 해고를 당할 말단 직원 분들 또한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보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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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넘어 뒷집의 젊은 총각
구성진 노래를 잘도 하더니
겨울이 다 가고 봄 바람 부니
새벽밥 해 먹고 머슴 가더라

산너머 구수한 박수 무당
굿거리 푸념을 잘도 하더니
제 몸에 병이 나 굿도 못하고
신장대만 붙들고 앓고 있더라

어리야디야 어리얼싸
어리야디야 앓고 있더라

길 건너 첫 집의 젊은 과부
수절을 한다고 아깝다더니
정 들은 이웃에 인사도 없이
그 춥던 간밤에 떠났다더라

집나간 자식이 돌아온다 하기
네 긴 골목을 뛰어가보니
동구 밖 너머론 바람만 불고
초저녁 단잠의 꿈이더라

어리야디야 어리얼싸
어리야디야 꿈이더라 
- 정태춘의 얘기 -




저 들 밭에 뛰놀던 어린 시절
생각도 없이 나는 자랐네
봄 여름 갈 겨울 꿈도 없이 크며
어린 마음 뿐으로 나는 보았네
도두리 봄 들판 사나운 흙바람
문둥이 숨었는 학교길 보리밭
둔포장 취하는 옥수수 막걸리
밤 깊은 노성리 성황당 돌 무덤
달 밝은 추석날 얼근한 농악대
궂은 밤 동구 밖 도깨비 씨름터
배고 픈 겨울 밤 뒷동네 굿거리
추위에 갈라진 어머니 손잔등을
허~어~허~

이 땅이 좁다고 느끼던 시절
방랑자처럼 나는 떠다녔네
이리로 저리로 목적지 없이
고단한 밤 꿈 속처럼 나는 보았네
낙동강 하구의 심난한 갈대 숲
희뿌연 안개가 감추는 다도해
호남선 지나는 김제 벌 까마귀
뱃놀이 양산도 설레는 강마을
뻐꾸기 메아리 산골의 오두막
돌멩이 구르는 험준한 산계곡
노을 빛 뜨거운 서해안 간척지
내 민족 허리를 자르는 휴전선을
허~어~허~

주변의 모든 것에 눈뜨던 시절
진실을 알고자 난 헤매였네
귀를 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어설프게나마 나는 듣고 보았네
길 잃고 헤매는 교육의 현장과
지식의 시장에 늘어선 젊은이
예배당 가득히 넘치는 찬미와
정거장마다엔 떠나는 사람들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와
젖은 논 벼 베는 농부의 발자욱
빛 바랜 병풍과 무너진 성황당
배 겨레 고난의 반도땅 속앓이를
허~어~허~

얼마 안 있어 이제 내 아이도 낳고
그에게 해 줄 말은 무언가
이제까지도 눈에 잘 안띄고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
아직도 풋풋한 바보네 인심과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들
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험난한 역경속 이어온 문화를
총명한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과
당당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깨었는 백성의 넘치는 기상과
한뜻의 노래와 민족의 재통일을
허~어~허~
- 정태춘의 얘기2 -
Posted by 보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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